하대교회는 충남 공주 갑사에서 가까운 시골교회이다. 연락도 하지 않고 길잡이를 자청해준 고종혁 목사(영천교회)와 함께 무턱대고 찾아간 날 어린이집과 붙어있는 사택에는 유기전 목사와 김경자 사모가 있었다. 갑자기 연락도 없이 들이닥친 날벼락(?)은 김 사모가 끓여내 온 커피 한 잔으로 곧 진정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유기전 목사와 김경자 사모의 목회와 삶의 이야기는 누에가 실을 뿜어내듯이 잔잔하게 그러나 쉼 없이 감동을 만들어 냈다.

   
▲ 유기전 목사와 김경숙 사모.
1951년생인 유 목사는 올해 우리 나이로 쉰여덟이다. 28년 전 나이 서른 살에 하대교회에 담임전도사로 부임했다. 그는 아버지 유흥춘 목사가 돌아가시면서 당시 하대교회 담임자였던 큰 형님의 권유로 졸지에 신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리전도사로 파송을 받았다.

교회에 짐을 푸는 날 ‘자네는 얼마나 있다 가는 감’하며 동네어른들이 인사를 했다. 그때 유 목사는 ‘아! 내가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부터 유 목사 부부는 동네 일을 찾아 다니며 했다. 돼지막을 고쳐주거나, 전등을 갈아주고, 페인트칠을 해준다거나 농사를 거들어 주기도 하는 등 그의 손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노인들이 하기 힘든 일을 했다. 집집마다 다니며 일을 거든 결과 마을 사람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유 목사 부부를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시골 단칸방에서 목회를 시작한지 10년 만에 교회를 짓자고 결정을 하고 동네에 있던 어린이집을 인수해 예배처소를 겸하게 됐다. 어린이집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유 목사는 차량을 운행하던 중 어린이집 아이를 치어 숨지게 하는 교통사고를 냈다. 무보험상태에서 생긴 이 일이 그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시련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바꿔주셨다. 마을이장이 앞장서서 그를 돕기 위한 모금을 했다. 또한 마을안에서 뿐만 아니라 공주지역을 다니면서 그가 10여년 동안 그 동네에서 보여준 선행을 알리고 모금을 했다. 이 일이 지역사회에 알려지면서 윤재기 변호사는 무료변론을 자청하기도 했다. 40여 일간 구속되었다가 동네사람들의 구명운동끝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리고 이 일로 그 동네는 모범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유 목사는 그 이후 또 차량을 운행하다 이웃교회 교인을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를 냈다. 이때도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구명운동을 했다. 이 일을 두고 동네 사람들은 ‘터가 센 탓’으로 돌리며 유 목사 부부를 위로하기도 했다.

어린이집과 사택 앞에는 몇 백년이 되었을 것 같은 큰 둥구나무가 있다. 이 둥구나무는 찬바람 불때가 아니면 동네 노인들의 놀이터가 된다. 이 둥구나무에 노인들 가운데는 농담처럼 ‘목사님과 같이 산다’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그 중에 박창병 할머니는 처음 농담이 나중 진담이 되었다. 박 할머니는 하대교회 부흥회 중에 참석해 은혜를 받고 교회를 출석하다가 아예 교회로 들어와서 살았다. 10년을 가족처럼 살다 권사직분을 받고 73세로 별세 했다. 이후 유재분 권사(93세)와 변광순 집사(84세)를 모시고 사택에서 함께 살았다. 유재분 권사는 2년을, 변광순 집사는 3년을 모시다 각각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 유목사 부부는 아직도 자신이 모셔야할 노인들이 많이 있다고 말한다. 그 노인들을 위하여 양로원을 운영하는 것이 기도제목이다.

어떻게 노인들을 수발하며 살 생각을 했을까? 김경자 사모는 “우리 목사님과 저는 잘난 것도 없고, 너무 부족한 것이 많아요. 그래서 늘 봉사하고 섬기며 살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부족한 만큼 열심히 섬겼습니다. 부족한 만큼 기도했습니다.”

이 부족에 대한 의미가 유 목사의 목회에는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부족한데도 하나님께서 다 채워주시는 겁니다. 부족한 우리가 지난 해 교인들의 손으로 교회를 지었습니다. 어디에도 보조를 받지 않고 순수하게 교인들의 힘으로 교회를 지어 봉헌했습니다.“

부족함이 절실한 만큼 그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절했다는 고백이다. 부족을 아는 사람을 헤아리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그는 목회적인 삶의 자리를 벗어나 본적이 없다. 까닭은 그 스스로 부족하다는 사실이 그 자신에게는 절실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부족한 것이 많다. 자신의 삶을 포장하는 기술도, 교인수를 늘리는 수완도 목회를 하면서 고생을 피해가는 요령도 부족했다. 안될 것 같으면 일찌감치 보따리를 챙겨 떠나는 약삭빠른 계산도, 목사가 되기 위해 거쳐야할 기본과정도 부족했다. 그런데 자신이 부름 받은 첫 목회현장에서 오늘까지 28년 동안 지키고 있었던 힘은 바로 이 ‘부족함의 영성’이었다. 그는 부족했으므로 주님이 주신 소명의 끈을 놓치지 않고 질기게 붙들 수밖에 없었고, 잘난 것이 없었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미련하게 붙잡고 살았다. 이 ‘부족함의 영성’은 오늘 이 시대 목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의 아름다움 영성의 향기였다.

   
▲ 어린이집과 사택 앞에 있는 둥구나무는 동네 노인들의 놀이터이자 교제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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